북한의 어학 공부방법

북한을 좋아해서가 아니예요. 태영호가 말하는 북한의 어학 학습 방법이라고 해서 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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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람들한테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북한에서는 엘리트 영어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전직 한국 외교관들도 자주 묻는다. 북한 외교관들은 현지 어학 연수도 못 했을 텐데 어쩜 그리 영어를 잘하느냐고 말이다.

 

북한에서는 중등 과정부터 영어를 가르치지만 일반 중학교 수준은 매우 낮다. 대신 수재 교육 시스템을 갖춰 도청 소재지마다 외국어 학원을 뒀다. 평양에는 평양외국어학원이 있다.

 

내가 다니던 평양외국어학원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8가지 언어를 가르쳤다. 냉전 시절이라 미국은 물론 서방 세계와 적대 관계였지만 영어 교육을 위해 영국에서 교과서와 영어 녹음 교재를 들여왔다. 밖에선 엄격하게 금지하던 미국·영국 영화도 일부 보여주면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했다.

 

 북한의 영어 교육은 한마디로 주입식에 기초한 '스파르타식 회화 위주' 교육이다. 한국의 영어 교육이 취직용이라면 북한은 외국인과 소통용이다. 

 

ⓐ 수업 시작 전 30분 동안 아침 읽기를 시킨다.

 

 평양외국어학원에서는 ⓐ 수업 시작 전 30분 동안 아침 읽기를 시킨다. 이른바 '모닝 리딩(morning reading)'이다. 교실 문을 확 열어둔 채 각자 읽고 싶은 것을 큰 소리로 읽는다. 거의 고함치는 수준이다. 교장이나 부교장이 복도로 지나다니면서 학생들을 감독한다.

발음 교육도 중시한다. 녹음기를 틀어 놓고 영국식 발음을 무조건 따라 하게 했다. 

 

ⓑ 교재를 암기하고 다음 수업 시간엔 '리텔링(retelling)'을 시킨다.

교재에 나오는 문장을 그대로 반복하지 말고 자기 말로 정리해 말하는 것이다. 짝과 특정 주제를 가지고 앞에 나가 5분 동안씩 발표도 한다. 

 

ⓒ 오후엔 30분씩 운동장이든 복도 구석이든 가서 짝과 30분 이상 영어로 말해야 한다. '잉글리시 코너 애프터눈(English corner afternoon)'이라고 하는 시간이다. 

 

ⓓ 어휘력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분기에 한 번씩 단어 경연 대회를 열어 누가 제일 많은 단어를 써내는가 본다. 우리 땐 더 많은 단어를 써내려고 영어 단어 3000개 소사전을 사서 A부터 Z까지 암송했다. 영어를 잘하려면 문장을 많이 외워야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영화 대본을 외우는 것이다. 영화 흐름을 생각하면서 배우 억양대로 대본을 암송했다. 나는 '메리 포핀스' '사운드 오브 뮤직' 대본을 거의 다 외웠다.

 

학교에서는 부모님께도 미국·영국 영화 본 이야기는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한번은 부모님께 학교에서 미국 영화를 봤다고 하니 어떻게 애들에게 미국놈 영화를 다 보여주느냐며 펄쩍 뛰셨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내 영국 교과서를 보고는 깜짝 놀라셨다. 식탁 옆에 강아지가 있는 사진을 보고 어떻게 집 안에서 개를 키울 수 있느냐, 엄청난 갑부 아니냐 하셨다. 나중에 영국에 가서 보니 평범한 집에서도 애완견을 키우고 있었다.

 

평양외국어학원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부모나 가까운 친척 중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면 들어갈 수 없다. 학교에서는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서 학생들에게 특권 의식을 심어줬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가슴에 평양외국어학원 배지를 달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다 부러워했다. 어린 나이지만 특별히 선발된 대상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택된 일부만 집중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북한과 달리 한국에선 모두가 영어를 배운다. 영어 사교육 시장이 몇 조원을 넘는다고 하는데 아이들의 영어 경쟁력엔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문법 위주의 비실용적 교육을 지나치게 많이 해서다. 과거 주재했던 덴마크나 스웨덴같이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나라에선 철저히 회화 위주 교육을 한다. 한국도 현실에 맞게 영어 공교육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회화 위주 평양식 스파르타 영어 교육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